No Problem

http://cafe.daum.net/gabee : 추천인다아-112번, 똠방

아래의 글은 무지막지하게 깁니다. 그리고 아직 인도를 경험하지 못한 분들에겐 현실감있게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도인들로 부터 그토록 숱하게 듣게 되는 "No Problem"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도에서 여행을 해봤거나 혹은 인도에서 살아 본 분들이라면 "No Problem"의 징함을 경험했기에 아래의 글이 보다 생생한 느낌으로 다가설겁니다. 차근차근 읽다보면 다소 이해를 할 수 있게 되고 인도를 여행하는데 있어서 인도인 이해에 도움이 될겁니다.

"No Problem"에 담긴 인도인의 가치관

  인도를 다니다 보면 인도인들로 부터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은 "No Problem"이다. 이것은 한국인들이 일상 생활 속에서 많이 쓰는 "죽을 것 같아!"라는 말 만큼의 형태와 유사하다. 인도의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자주 "No Problem"이라는 말을 쓰는지라 그 말이 진짜 올바른 영어인지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이다. "No Problem"이라는 말은 정확한 영어이다. 영국, 미국 사람도 일상생활 가운데 쓰는 말이다. 다만 그 말을 쓸 때는 자기가 책임을 지겠다고 하는 의미가 들어 있다. 하지만 인도에서는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것은 한국인들이 "죽겠어"라고 말하는 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언어 습관과 유사하다.

인도인의 생활 철학을 규정하는 중요한 단어 가운데 "카르마"와 "다르마"를 들 수 있다. 카르마는 업보이고 다르마는 의무를 말한다.

 인도에서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각자의 카스트에 속하게 된다. 카스트는 종교적인 의미에서 정결하고(holy) 부정한(unholy)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 신과 가까이 있으면 있을수록 정결하고 반대로 멀리 있으면 있을수록 부정하다고 생각한다.

 신과 가까이 있는 제사장 카스트(브라만)가 종교적으로 가장 높고 반대로 불가촉천민이 가장 부정하다고 믿는다. 이것은 각각의 직업에 따라 오염도라는 것에 대한 노출이 어느정도이냐에 따라 그 카스트가 세습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각 카스트에 속한 사람은 각자가 행해야 하는 의무가 다르다. 제사장(브라만)의 의무가 다르고 청소하는 사람의 의무가 다르다. 각자의 고유한 의무를 잘 수행하면 할수록 선을 행하는 것이고 따라서 자기의 업보를 쌓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자기의 의무를 등한시하거나 다른 사람의 의무를 자기가 대신해서 행하게 되면 악을 행하는 것이고 업보를 쌓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해하는 선악의 개념과 인도인이 이해하는 선악의 개념은 다르다. 인도에서는 절대적인 선이나 악이 없다. 선이나 악은 각 사람에 의해 혹은 각자의 상황에 따라 결정될 뿐이다. 인도에서는 상대적인 선과 악이 존재할 따름이다.

  이제 복잡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길 해보자. 인도인과 한국인의 패러다임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다르다. 즉 우리 기준에서 인도인을 이해하려고 하면 그것은 불가능하기도 할 뿐더러 오히려 문화적 편견만을 가중시킬 뿐이다.

  헤겔(Hegel)은 그의 "역사철학"에서 "힌두교는 윤리관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헤겔의 주장이 과장된 것이라고 할지라도 힌두교가 제시하는 윤리관이 다른 고급종교에 비해 약한 것은 사실이다. 즉, 힌두교는 그 신자들에게 일반적이고 공통적인 윤리체계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다음 이야기를 읽어보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옛날, 아주 오랜 옛날 어느 밀림에 사냥꾼들이 몰려와 사자를 잡기 위한 함정을 파놓고 돌아갔다. 며칠이 지난 후 사자 한 마리가 그곳에 왔다가 그만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사자는 함정에 빠진 자기 신세를 한탄하고 있다가 마침 당나귀 한 마리가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는 것을 보고 소리 높여 외쳤다.

 "나귀 형님! 나 좀 구해주세요 !"

  그러나 나귀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말했다. "내가 너를 구해주면 나를 잡아먹으려 할텐데 내가 미쳤니?"  다급해진 사자는 "나를 구해 주기만 하면 그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동물의 왕인 저의 큰 형님으로 모시고 이 사실을 밀림의 모든 동물에게 알리겠습니다."라고 애걸하였다. 이에 솔깃해진 당나귀는(힌디로 당나귀는 "가다"이고 바보라는 뜻도 있음) 사자를 구해 주었다.

  함정에서 빠져 나오자마자 사자는 당나귀를 잡아먹으려고 으르릉대며 달려들었다. 이에 놀란 당나귀는 "잠깐! 잠깐! 이게 무슨 짓이야 ? 조금 전까지 나를 형님으로 모시겠다고 하더니 나를 잡아먹으려고 해!"라고 항의했다. 이 말을 들은 사자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이 바보 당나귀야 ! 사자가 당나귀를 잡아먹는 것은 사자의 다르마야. 이런 다르마를 알면서도 나를 구해준 것은 네 잘못이야 !"하고 말했다.

 이렇게 사자와 당나귀가 옥신각신하고 있을 때 마침 한 브라만이 그곳을 지나갔다. 브라만을 본 사자와 당나귀는 누구의 말이 옳은지 브라만에게 판단을 내려달라고 하기로 결정했다. 먼저 당나귀의 억울함을 들은 브라만은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는 걸. 사자 자네가 설명해 봐."하고 말했다. 사자는 신이 나서 설명했지만 브라만은 역시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사자의 말을 들어보아도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가 안돼. 그럼 처음 둘이 만났을 때의 위치에 가서 서봐."하고 말했다. 그러자 당나귀는 함정의 옆에 가서 섰고 사자는 함정 속으로 뛰어들었다.

  사자가 함정에 뛰어 든 것을 확인한 브라만은 당나귀를 재촉하며 그곳을 떠나려고 하였다. 이것을 본 사자는 "무슨 짓이야? 나를 버려 두고 떠나려고 하다니"하고 외쳤다. 사자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본 브라만은 "당나귀를 잡아먹는 것이 사자의 다르마(의무)라면 맹수를 잡아 가두는 것도 인간의 다르마(의무)이다. 인간의 다르마가 무엇인지 아는 네가 내 말을 믿고 함정에 다시 들어 간 것은 네 잘못이다."라고 말하며 떠나가 버렸다. 

- 인도 우화집 빤쯔딴뜨라 가운데 발췌    

   위의 우화에서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다르마(의무)가 "정직"과 "부정직"이라는 윤리적 측면보다 우선한다는 사실이다. 즉, 인간이나 동물이나 모두 그 자신에 맞는 다르마(의무)가 있고 그것을 수행하기 위해서라면 약속을 어겨도 되고 상대를 기만해도 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다르마는 윤리보다 상위개념인 것이다. 이것은 다르마의 준수 여부에 의해 까르마(업보)가 결정되고 궁극적으로는 해탈의 성패를 결정짓게 된다는 힌두교의 세계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해탈이 궁극적 목적이므로 현세에서의 윤리는 단지 2차적인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대단히 부도덕한 자가 단 한가지의 헌신으로 나에게 경의를 표한다면, 그는 자신의 모든 죄악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자로 대접받을 수 있다.   - "바가와드 기따(Bhagavad Gita) 9장 30절"

   위에서 예를 든 바가와드 기타에서도 나타나듯이 힌두교에서는 세속적인 윤리와 도덕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힌두교가 규정하고 있는 세 가지의 근본적인 죄악 즉, 육욕, 분노, 탐욕 등도 이것들이 사회질서를 혼란시키는 비윤리적인 행위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 아니라 해탈에 장애가 되는 결정적인 요인들이기 때문에 죄악시되었던 것이다. 

    사실상,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 다시 이 세상에 어떤 모습으로라도 태어나지 않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힌두교에서는 현세의 윤리에 최상의 가치를 두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있어서 꼭 지적해 두어야 할 것은 헤겔의 주장처럼 힌두교에 윤리관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헤겔의 관점은 기독교의 10계명과 같이 보편적이고 공통적인 윤리체계를 힌두교에서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폭언에 가까운 말을 한 것이다. 힌두교에는 다르마(의무)라고 하는 매우 느슨한 형태의 윤리체계가 존재한다. 비록 체계화되지 못하고 카스트에 따라 기준이 다르지만 다르마는 개인의 의무인 동시에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율법이었다. 10계명과 같이 명확한 형태를 갖추지는 못했지만 인간 사회 어느 곳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윤리체계가 다르마라고 하는 커다란 그릇 속에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이야기이겠지만, 인도인을 이해하는데 나름대로 큰 도움이 됐을것이다. 만약 뭔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으면 다시 한번 차근차근 읽어보길 권한다.

    이제 이야길 다시 처음 거론한 "No Problem"으로 돌아와 보자. 인도인이 "No Problem"이라는 말을 쓸 때는 위에서 말하는 인도인의 의식 구조를 이해하고 들어야만 한다. 즉 자기가 "No Problem"이라고 말했지만 자기가 다 책임을 지겠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즉 어떤 일이 되어지기 위해서는 물론 자기가 전적으로 책임져야하는 아주 단순한 일도 있겠지만 대개 무슨 일을 하든 자기 혼자만의 책임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책임이나 의무를 포함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회사를 운영한다고 하면 물론 사장의 책임을 물어야 하는 일도 있겠지만 말단 종업원의 의무나 책임을 물어야 하는 일도 수없이 많을 것이다. 우리네 사고 방식으로는 사장이 "No Problem"이라고 말하면 사장 자신의 의무나 책임은 말할 것도 없고 말단 직원의 책임이나 의무를 사장이 모두 지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것이다. 사장이 "No Problem"이라고 말하면 당연히 그렇게 일이 되도록 사장이 말단 직원들을 움직여서 일이 되어지도록 하는 줄로 기대할 것이다. 인도에서는 이게 안되니 어렵다는 것이다.

   사장은 "No Problem"이라고 말했지만 그 말은 자기가 100% 자기의 말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말이라기보다는 자기의 바람(Wish)을 말했을 뿐이다. 인도인은 매사에 종교적이기 때문에 "No Problem"이라고 말하면 , 즉 "그렇게 바라면 혹시 신이나 신들이 도와주어서 일이 잘되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라는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있다. 어차피 미래는 불확실한데 "Some Problem"이라고 말하는 것보다 문제가 없을 것이다. 혹은 "문제가 없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나은가"라는 생각이다.

  또 한가지는 자기가 규정한 자기의 책임 한계(그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는 본인 외에는 아무도 모르고 수시로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겠지만) 내에서는 "No Problem"이라는 말이다.

  이 정도에 이르면 경악을 하는 한국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절망항 만한 일은 아니다. 인도인이 당신에게 "No Problem"이라고 말하면 어떤 의미에서인지를 꼬치꼬치 캐어 물어 보면 된다. 당신이 인도인을 상대로 해서 사업을 한다면 어떻게 해서 일이 되어지고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를 다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No Problem"이라고 말하는 인도인을 유치원생이라 생각하고 모든 것을 하나하나 물어 보고 짚어 나가 보라. 다음에 문제가 발생한다면 어디에서 발생하게 될 것인지를 점검해 보라.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일이라도 말이다. 물론 이러한 과정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반복해야만 한다. 설령 늘 함께 하는 사업 동반자라 하더라도. 

"죽겠어"라고 말하는 한국인의 말을 액면 그대로 이해했을 경우 코미디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마찬가지로 "No Problem!"이라고 말하는 인도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 들일 때에도 기대에 어긋나는 상황이 연출되곤 한다. "No Problem!"이라고 말하는 인도인들.. 그리고 이해를 하지 못하는 이방인들... 그것은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이다. 즉 패러다임 자체가 다른 것이다.

이제 "No Problem!"을 이해했는가? 그러면 당신은 인도에서 정말 "No Proble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