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탄생

2. 성장

3. 왕비로의 간택

4. 명성황후

5. 대원군과의 대립

6. 열강의 침략

7. 임오군란

8. 세자의 어머니

9. 동학혁명

10. 명성황후의 시해

11. 홍릉

12. 홍릉 수목원

 

                                                   

 

  <다음 글은 주로 특징 명성황후를 찾아서
(여주 문화원 사무국장 준암 조성원을 기초로 작성하였다.>

       http://www.womantopic.com/main.htm


 1. 탄생

  

  민자영(閔紫英) 명성황후는 1851년(辛亥 철종2) 9월 25일 여주군 근동면 섬삭리(지금의 여주군 여주읍 능현리 250-2)에서 태어났다.

  명성황후는 여흥민씨 27세 손으로 7대조 민광훈은 알성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좌의정에 올랐으며, 민광훈의 세 아들 민시중(閔蓍重), 민정중(閔鼎重), 민유중(閔維重) 3형제는 매우 뛰어난 족적을 남겨 삼방파(三房派)라고 하며, 민광훈의 3대가 문과에서 연속적으로 장원급제한 조선시대에서 단 2개의 가문중의 하나였다. 이 삼방파는 약 3백년 동안 문과 급제자 70인, 부원군 3인등 정3품 이상의 당상관만 127인을 배출하고 있다. 명성황후의 6대조 민유중(閔維重)은 명망 높았던 학자이며 문장가로서 여양부원군에 봉해졌고, 그의 딸이 숙종비인 인현왕후이다. 명성황후의 증조부 민백분(閔百奮)은 충청감사를 역임한 후 증직으로 홍문관대제학을 제수받았고, 조부 민기현(閔耆顯)은 도승지와 개성유수로 지냈다. 아버지 여성부원군 민치록(閔致祿 1799 - 1858 추증 영의정. 시호 純簡)은 여양부원군 민유중(閔維重)의 5대장손으로서 자는 원덕(元德)이다. 벼슬은 1830년 (庚寅 순조30) 참봉을 시작으로 과천현감(종6품), 임피현령(종5품), 덕천군수(종4품), 장악원 첨정(僉正 종4품)을 거쳐 연천군수(종4품)에 이르렀다. 민치록의 첫 번째 부인(해주 오씨 1788-1833 추증 해령부부인)은 임금이 내린 벼슬을 여러 차례 사양하다가 이조참관으로 추증된 오희상(吳熙常)의 딸로 후사없이 죽었고 두 번째 부인(한산 이씨 1818-1874 한창부부인)이 명성황후의 생모로서 훗날 민승호와 함께 죽동궁에서 폭사당하였다.

 

  명성황후의 선조를 보면 여흥민씨 20세조 민광훈의 3째인 민유중을 이후 22세 민진후-23세 민익수-

24세 민백분 - 25세 민기현 - 26세 민치록까지 민치록은 5대 장손으로 이어온다.

 

            20世 민광훈(閔光勳) → 21世③ 유중(維重)

22世

23世

24世

25世

26世

27世

28世

진후→

  鎭厚

①익수→

  翼洙

①백분→

  百奮

①기현耆顯→

치록致祿

승호升鎬

(生父致久)

영익泳翊

(生父台鎬)

자영(紫英)명성황후

진원→

  鎭遠

②형수→

  亨洙

①백상→

  百祥

①홍섭弘燮→

(生父 百興)

①치삼致三→

(生父 相燮)

태호台鎬

(生父 致五)

영익

 (升鎬에게 양자감)

순명황후(順明皇后)

①영린泳璘(生父 述鎬)

②백흥→

  百興

홍섭弘燮(백상百祥에게 입양)

②상섭相燮→

치삼致三(홍섭弘燮으로 양자 감)

①치오致五→

태호台鎬(치삼致三으로 양자 감)

①규호奎鎬→①영소泳韶

③진영→

  鎭永

①낙수→

  樂洙

③백술→

  百述

 

①단현端顯→

  生父 百裕

②치구致久

①태호泰鎬→

영환泳煥

(生父 謙鎬)

부대부인(府大夫人) 민씨(흥선대원군 부인)

승호升鎬(치록致祿으로 양자 감)

겸호謙鎬

영환泳煥

 (泰鎬로 양자)

①영찬泳瓚

②각수

  覺洙

①백준

  百準

①정현靖顯

①치응致應

①석호奭鎬

①영돈泳敦 →①천식千植

             ②만식萬植

                갑완甲完

 

   위에 간단히 나타낸 족보를 참고로 앞으로 전개되는 인척관계를 알기 쉽도록 간단한 설명을 한다. 조선시대에서는 대를 잇는 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였으며, 민치록은 자식들이 일찍 죽고, 무남독녀로 민자영(명성황후)만을 두었으므로 민치구(致久)의 둘째 아들인 민승호(升鎬)를 입양하였다. 민승호도 역시 아들이 없었으므로 민태호(台鎬)의 아들 민영익(泳翊)을 양자로 들여온다. 민태호(台鎬)의 딸은 또한 마지막 황제인 순종비인 순명황후가 된다. 민승호를 입양보낸 민치구(致久)의 첫째 아들인 민태호(泰鎬)도 아들이 없어 동생 민겸호(謙鎬)의 아들 충정공 민영환(泳煥)을 입양하였다. 또한 민치구의 딸은 흥성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의 부인인 부대부인 민씨이다. 즉, 민영환의 생부는 민겸호로 철종 12년, 1861년에 태어났으며, 할아버지가 민치구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장인이고, 이하응의 부인인 부대부인 민씨의 둘째 아들 이명복이 고종 임금이니 고종황제와 내 외종간이었다. 또한 작은 아버지 민승호가 민치록에게 입적되어 명성황후와는 조카뻘이 된다.

   명성황후를 모셨던 엄비는 이은 영친왕을 낳고, 배필로서 민영돈의 둘째 딸인 민갑완(甲完)을 삼고자 하였다. 여흥민씨로 5번째 왕비로 될 예정이었 민갑완은 일제의 계획에 따라 이은이 일본인인 이방자 여사와 국제결혼하므로서 평생 독신으로 살아야 하는 애처로운 여인이 되었다.

 

부대부인 민씨

 

  부대부인 민씨는 민치구(閔致久)의 딸로서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의 부인이다. 일찍이 가톨릭을 믿어 일과문(日課文)을 읽었다. 1863년 둘째아들 명복(命福: 고종)이 왕위에 오르자 운현궁(雲峴宮)에서 감사 미사를 올렸으며, 그 해 12월 여흥부대부인으로 봉작되었다. 1866년 고종비(妃)를 간택할 때는 친정의 일족인 여성부원군 민치록(閔致祿)의 딸을 천거, 왕비로 책봉하게 하였다. 1896년 10월 주교(主敎) 뮈텔로부터 영세를 받았다. 고종의 유모이며 같은 교우인 박(朴)마르타와 함께 프랑스인 주교 베르뇌를 통해 프랑스 정부의 도움으로 남진(南進)하려는 러시아 세력을 꺾으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명성황후 생가(明成皇后生家) : 여주

 

  지정번호 : 유형문화재 제46호

  지정일 : 1973.7.10

  시대 : 조선1687 (숙종13)

  소재지 : 경기도 여주군 여주읍 능현리 250-2

  규모 : 2잔존건물 30평

  재료 : 목조와즙 (木造瓦葺)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황후로 개화기 국정에 참여하였으나 을미사변으로 일인에 의해 시해되어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쳤던 명성황후 민씨가 출생하여 16세까지 살던 집이다.

   1687년(숙종 13)에 왕의 장인 민유중의 묘막(墓幕)으로 건립되었는데 당시 건물로서 남아 있는 것은 안채 뿐이다.  최근에는 1975년과 1976년에 안채가 중수되었고 1996년에는 안채가 수리되고 행랑채와 사랑채, 별당채 등이 복원됨으로써 면모가 일신되었다.

   넓은 바깥마당에 면하여 솟을대문을 가진 一자형 행랑채가 서고 그 뒤에 중문과 사랑이 붙은 ㄱ자형 문간채와 ㄱ자형 안채가 안마당을 둘러싸서 튼 ㅁ자형 배치를 이루고 있으며 그 옆으로 一자형 별당채가 독립된 영역을 형성하고 있다.  안채는 14칸 규모의 민도리집인데 8칸 규모의 팔작지붕 본채 한쪽에 6칸 규모의 맞배지붕 날개채가 붙어 ㄱ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본채는 전면에 퇴칸(退間)이 있는 오량구조인데 2칸 안방과 4칸 대청, 1칸 반 건넌방, 2칸 부엌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고 날개채는 3량 구조로 안방 앞쪽에서 꺽이어 1칸 반 온돌방과 3칸 부엌, 1칸 반 광이 위치하고 있다.

  이 집은 재목도 그리 크지 않고 간살도 넓지 않으나 부재의 형태와 결구법 등에서 조선 중기 살림집의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옛집 옆에 남편 고종이 세운 탄강비(誕降비)와 민유중의 신도비가 있다.

 

가는길

   영동고속도로가 많이 막힐 것이 뻔한 날이면, 아예 문막 IC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낫다. ⓐ지점 문막에서 42번 국도를 타고 여주로 향한다. 42번 국도는 올해 4차선으로 완전 개통되어, 20분이면 여주 시내 아래쪽 ⓑ지점에 도달할 수 있다.

 

 영동고속도로 여주 IC에서 빠져나온 차가 서울로 향하려면, ⓑ지점을 거쳐 42번 국도를 타고 이천 방향으로 나간다. 중간에 별다른 지름길은 없다. 다만 양평 방향으로 올라가 서울을 가려면, 복잡한 양평으로는 들어가지 말고 여주에서 양평의 중간쯤인 이포대교에서 남한강을 건너 곤지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문막에서 서울로 향하는 가장 정통적인 길은 42번 국도를 타고 여주를 거처 이천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다만 이 길을 가려면 이천의 복하2교에서 시내를 우회해야 한다.

 

 참고   http://www.ngodoore.com/dr2000_12/pre_tour.html

          http://www.munhwa.co.kr/content/2002011601012626055001.html

          http://www.donga.com/life/travel/road/sub19.html

 

 인현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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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왕후 : 성장